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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다 닳도록 꽃만 만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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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16 14:24 조회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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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상할까, 색이 잘 나오지 않을까, 지난한 기다림을 견뎌내고 꽃을 피우는 일. 지화 명인 정명스님의 손이 늘 푸르다 못해 검고, 갈라지다 못해 지문조차 없어진 이유다. 

■ 불교지화장엄전승회장 정명스님

꽃과 사랑에 빠진 열여섯 소녀

40여 년지나 불교지화장인으로

“부처님 계신 곳, 이왕이면

예쁘게 꾸미고 싶어 시작한 일“

천연염색 고집하며 지문 닳아

쪽물에 갈라지다 못해 지문조차 없는 손.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벌겋게 곪은 열 손가락을 정명스님이 뚫어지게 쳐다봤다. “부처님 계신 곳, 신도들이 마음 내어 찾아오는 곳, 이왕이면 예쁘게 꾸미고 싶었죠.” 40여 년 이상을 견뎌온 닳고 헤진 손끝을 만지는 정명스님의 눈시울이 붉다.

불교계에서 정명스님 존재는 특별하다. ‘꽃 만드는 스님’하면 열에 아홉은 정명스님 이야기부터 꺼낸다. 그도 그럴것이 꽃으로 부처님 도량을 장엄하는 데 보낸 세월만 반세기에 가깝다. “제가 특별하기보다 ‘지화’ 만드는 사람이 흔치 않아서 그래요. 보는 사람이야 ‘와 예쁘다’하고 한번 쓱 훑어보고 지나가면 되지만, 종이꽃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손을 많이 타는 일이거든요. 천연염색을 하면 더 그래요. 하루 종일 염색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거칠어지고 갈라지는 건 금방이에요. 험한 일이죠.”

꽃보다 아름다운 열여섯, 이제 막 출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부처님 미소처럼 화사하고 예쁜 꽃장식이 성큼 들어왔다. “은사인 태경스님 외출길에 따라나섰다가 약국 앞을 지나가는데, 그 안에 있던 꽃 장식을 보고 한눈에 반했죠. 어찌나 예쁘던지. 부처님 계신 곳도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좋게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 그걸 그대로 눈에 담아 왔죠.”

인연은 그날부터 시작됐다. 그날 이후 꽃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구해 틈틈이 법당을 꾸몄다. 스님이 법당을 꾸미는 모습을 본 한 신도가 “취미생활하시라”며 전해준 꽃꽂이 책 한권이 ‘꽃 스님’으로의 인생을 열었다. 처음엔 생화였다가 지화로, 인공염색에서 천연염색으로,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을 이었다.

“젊은 시절, 꽃꽂이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 찾아간 학원에서 수업을 하던 강사가 하느님이 꽃을 이렇게 예쁘게 만드셨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죠. 승복은 입은 사람이 바로 앞에 둘이나 있었는데 말이에요. 충격이었죠. 다른 한편으로는 불자들이 꽃을 배우러 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꽃을 좋아하는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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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연화세계 주지 정명스님이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불교전통지화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는 16세기 조선시대 감로탱화 불단을 그대로 재현, 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스님은 “지화를 하나의 불교 문화, 문화재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공염색에서 천연염색으로 방식을 바꾸고, 직접 나서 지화 만들기 강연을 하며 전승에 나서기 시작했다.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꽃 전시를 처음 준비하던 때는 “스님이 봉사나 하지 쓸데없는 일한다” “팔지도 못할 거, 뭐하러 사서 그런 고생을 하나” 등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도 100여 일 동안 서울 곳곳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전시 준비를 했다. 그 고생 끝에 연 첫 전시가 1988년 부처님오신날 개최한 '88올림픽 축하 불교 꽃잔치'. 개막 첫 날에만 1000여 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1988년 전시회에 낸 작품이 130점이었는데, 그 땐 정말이지 하루종일 꽃만 만졌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불교 지화를 보러 와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죠. 그때의 뿌듯함은 이루말할 수 없어요.”

곱디 곱던 섬섬옥수는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변해갔지만 그럴수록 꽃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지금도 재료 구입부터 종이를 떠내고 천연염색으로 직접 색을 입혀 꽃모양을 잡는 일까지, 스님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 없다. 무엇보다 천연염색은 수작업으로 수십 번의 염색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 녹색 이파리를 만들기 위해선 살살 흐르는 쪽물과 치자물에 종이를 한 장씩 넣고 흔들어 물을 들이고 말리는 일을 각각 5번씩 반복해야만 제 색이 난단다.

행여 종이가 상할까, 색이 잘 나오지 않을까, 지난한 기다림을 견뎌내고 꽃을 피우는 일. 지화 명인 정명스님의 손이 늘 푸르다 못해 검고, 갈라지다 못해 지문조차 없어진 이유다. “화학염색이 아닌 천연염색이라야 지화를 문화재로 만들 수 있다는 데 더 좋다니까요. 지화 만드는 일이 더 많이 보급되면 1년 내내 법당과 사찰에 꽃 공양을 올릴 수 있잖아요.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오고가는 분들이 장엄된 지화를 보고 밝은 표정을 보일 때마다 고생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아요.”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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